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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Kim's View/투자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철학에 대한 고찰

by Yun Kim 2016. 11. 1.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철학에 대한 고찰

 

내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장 가까운 투자자로는 메리츠자산운용의 존리 대표를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투자자 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까지의 모습보다는 기업이 5년, 1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있을 지를 보고 투자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매수 후 보유’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도 같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견해는 크게 엇갈린다.

 

“비싼 주식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이 비싸진 이유는 성장 가능성 때문이죠. 투자한 회사가 돈을 잘 벌고 성장성이 있다면 주가가 얼마까지 올랐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 160327. 이데일리. `주식전도사` 존리 "밸류보단 성장성…비싼 주식엔 이유가 있다"

 

- 메리츠자산운용 존리 대표

 

보통 주식은 싸게 살수록 좋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런데 존리 대표는 주가가 얼마까지 올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는 싸게 사려는 노력도 마켓타이밍으로 보는 듯했다. 나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보여준 것이 참 많은 그였기에 뭔가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던 나는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보고, 투자시간을 길게 늘려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식의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결국 가격에 대한 그의 관점을 이해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나와 존리 대표의 견해가 다른 부분과 메리츠코리아펀드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질문을 약간 바꿔서 접근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존리 대표는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의 과거에서 답을 찾아보았다. 존리 대표는 미국에 체류할 당시 ‘스커더’라는 투자회사에서 일했다. 스커더의 주식투자 철학은 단순명료했는데 바로 회사의 일부분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샀다 팔았다 하지 않고 동업자처럼 오랜 기간 함께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존리 대표 역시 1991년부터 15년 간 '코리아 펀드'를 담당하면서 회사 방침에 따라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의 우량주를 장기간 보유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5,000원에 매수해서 140만 원에 팔았고, SK텔레콤은 3-5만 원 사이에서 매수하여 440만 원에 팔았다고 밝혔다(SBS CNBC. 더 트레이더 9회).

 

- 삼성전자 주식차트

 

배당금을 포함하지 않고도 삼성전자는 약 93배, SK텔레콤은 약 110배 정도의 수익을 거두었다. 100루타! 피터린치의 '10루타'를 10번이나 기록한 셈이다. 그것도 여러 종목에서 말이다. 이런 성공 경험은 한국에 와서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메리츠코리아 펀드의 PER는 평균 3-40대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하게 PER10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기업의 볼륨이 3-4배 정도 커지면 극복할 수 있는 수치다. 실제로 존리 대표의 각종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투자한 종목들이 최소한 몇 배는 성장할 것으로 보는 듯 했다.

 

“삼성전자도 1만 원을 거쳐 100만 원 넘게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를 7,000원에 사든, 1만 3,000원에 사든, 가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소 5~6배 수익을 내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20% 빠지고 오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160713. 뉴스핌. [1조 공룡펀드] 존 리 "단기적 20% 손실 중요치 않아"

 

-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코리아펀드 보유주식 상위종목 TOP5

 

모든 기업이 삼성전자처럼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에 사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삼성전자나 SK텔레콤 같은 기업은 대단히 드문 케이스다. 성장기의 작은 기업이라면 5배, 10배 성장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데 메리츠코리아펀드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아모레G, 코웨이, CJ, 에스원, LG생활건강이 TOP5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주식들은 기본적으로 ‘조’단위의 대규모 기업에 해당한다. 즉,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런 기업들도 비용절감, 판매처 확대 등의 노력을 통해 30%, 50%는 성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5배, 10배 성장은 노력만으로 안 된다.

 

기업의 체급을 변화시킬 정도의 성장은 회사 차원의 혁신을 가하거나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야 가능하다. 현재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도 반도체, 핸드폰,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애니콜 화형식’, ‘갤럭시S2 출시’와 같은 시의적절한 대처를 통해 수십 배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기업은 한 섹터에서 1-2개 남짓이다. 대부분 현상유지하고, 변화의 바람이 불 때 도태된다. 삼성전자가 도약하는 동안 수많은 반도체 업체와 핸드폰 업체는 인수당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LG전자조차 IMF 때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를 떼어내는 아픔을 겪고, 10년 후에는 스마트폰 대응이 늦어지면서 현재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가. 시간이 흐르면 메리츠코리아펀드 포트폴리오 내 몇몇 기업은 큰 성장을 이뤄내겠지만 고평가 논란에 시달리는 나머지 기업들은 그 수익을 상쇄시켜버릴 우려가 있다.

 

포트폴리오 구성 또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수십 종목에 나누어 투자하는 형태다. 보통 분산투자는 위험관리를 목적으로 한다. 그렇지만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중국주, 화장품주에 집중되어 있어 산업/구조적 위험이 전혀 상쇄되지 않는다. 코스피가 회복세를 보이는 동안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오히려 하락이 가속화되었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분산투자를 했다기보다는 특정 섹터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한 듯한 모양새다. 즉, 어느 기업이 치고 올라갈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산업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은 갖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겠다.

 

- SK텔레콤 주식차트

 

모든 기업에 대한 성장성을 확신할 수 없다면 매수가격이라도 낮춰야 한다. 하지만 존리 대표는 시장의 가격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시장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했듯, 존리 대표는 SK텔레콤을 3-5만 원 사이에서 매수하여 440만 원에 팔았다고 밝힌 바 있다(현재는 10:1 액면분할을 한 상태이므로 44만 원에 팔았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서 440만 원까지 올랐을까?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기대심리’나 ‘탐욕’과 같은 비이성적인 요인으로 거품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이는 좋은 기업임에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가격대를 회복하지 못한 SK텔레콤의 주가가 말해주고 있다. 아마 존리 대표도 440만 원은 비합리적인 가격이라 여겨서 팔지 않았을까.

 

이처럼 기대가 반영된 가격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오랜 기간 회복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 물론 존리 대표를 비롯한 메리츠자산운용의 훌륭한 직원들은 주식을 매수하기 전부터 꼼꼼하게 리서치하고, 기업방문도 해보면서 가치에 대한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주식들이 한창 상승하고 있을 때 매수했다는 점은 다시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나하나씩 보면 다 좋은 기업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투자자들도 같은 의견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비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코리아펀드 자산구성

 

주가가 내려가면 더 좋아할 일이 아닐까? 같은 회사의 주식을 더 싸게, 말하자면 같은 금액으로 주식을 더 많이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존리. 왜 주식인가

 

시간을 길게 보면 존리 대표의 관점은 큰 위력을 발휘한다. 포트폴리오에 속한 기업의 주가가 떨어졌을 때 추가매수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속칭 ‘물타기’다. 메리츠코리아펀드의 기업 선택이 옳았다면 국면이 전환될 때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메리츠코리아펀드의 자산구성은 주식 96.74%로 거의 모든 금액을 주식에 쏟아 붓는 구조다. 주가 하락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 네이버 금융. 메리츠코리아증권투자신탁, 코스피 1년 수익률 비교

 

자산구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추가로 유입되는 자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여기는 한국이다. 해외는 어떨지 몰라도 한국의 투자자들은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금융위기도 아니고, 종합주가지수가 올랐는데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연 20% 손실이 났다? 이 정도면 인버스에 투자한 수준인데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범위이다. 게다가 보통 주식에 대한 지식 없이 존리 대표와 자산운용사를 보고 돈을 맡긴 투자자가 많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손실이 확정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환매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그렇다 해도 손실 상태가 지속되면 곤란하다. 기다리다 지친 투자자들이 회복 타이밍에 연쇄적으로 환매 신청을 할 우려가 있어서다. 이러면 도약해야 할 타이밍에 차질을 빚게 된다. 나중에 펀드가 다시 정상궤도를 달린다 해도 불안요소가 있다. 수익률이 +로 돌아설 무렵부터 “역시 존리!”하면서 다시 자금이 몰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운용방침을 바꾸지 않는 한, 고객이 주식을 사라고 맡긴 돈이라며 주식비중을 95%이상으로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싸게 살 수 있었던 주식을 비싸지고 나서야 매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다.

 

주식은 굉장히 변동성이 있는 거예요. 자신감이 있어야죠.
- 존리

 
명언이다. 어쩌면 나도 주식의 변동성에 가려서 존리 대표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를 감안해도 고객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움직이도록 포트폴리오를 보수적으로 구성하거나 하락했을 때 싸게 주워 담을 수 있는 슬랙(slack)을 마련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펀드운용 주체는 메리츠자산운용이지만 그 펀드에 돈을 납입하는 건 고객이다. 고객의 자금납입은 펀드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의 시선에 맞춘 ‘현지화’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고객의 심리도 주식만큼이나 변동성이 크기에.